언론보도

<한겨레>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2015.3.27)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내 연구실에서 정현채 교수를 만났다. ‘죽음학 전도사’를 자처한 그는 종교학과 의학의 전례 없는 학문간 협동을 통해 죽음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벌이고 있다. 사후세계와 윤회를 믿는 그에게 죽음은 “꽉 막힌 돌담 벽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열린 문”이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죽음학 전도사’ 정현채

예전에는 서울에도 군데군데 무덤이 흔했다. 내 어릴 적 뒷동산 소나무 숲에도 무덤 세 기가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 화장실에 나온다는 귀신 얘기에 꺅 소리를 지르며 옷도 못 추스른 채 도망갈 만큼 겁이 많았지만, 뒷동산 무덤들을 무서워하진 않았다. 그 시절엔 봉분이 지금보다 컸던 걸까, 우리가 워낙 작아서였을까. 세 개의 무덤을 각자의 레인 삼아 올라타고 누가 더 잘 나가는지 미끄럼 내기를 하며 놀았다. 나중에 자라서 “북망이래도 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란 무덤들 외롭지 않으이…” 하는 박두진의 시 을 읽고는 어린 시절 나의 ‘무덤 놀이터’가 떠올라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다.

그러나 도시재개발과 함께 죽음도 수도권 바깥으로 밀려났다. 무덤이 있던 곳엔 고층아파트가 들어섰고 이제는 아무도 대문에 조등(弔燈)을 달지 않는다. 도시는 번성하고 수명은 늘었지만 사람들은 기를 쓰고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며 산다. 죽을 기미가 보이는 사람들은 황급히 병원 중환자실로 이송되고 호스를 주렁주렁 단 채 기계음과 함께 죽어간다. 죽음은 삶으로부터 격리되어 있고 싸워 이겨야 할 적(敵)이며 공포의 대상이다.

정현채를 만든 시간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임종기 환자의 고통만 가중시키는 일들

죽음이 낯설어진 세상에서 다시 죽음을 생각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2005년 결성된 한국죽음학회는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라는 표어 아래 ‘잘 죽는 법’을 화두로 제기하고 (2010), (2013) 같은 책도 펴냈다. 그 중심인물 중의 한 사람, 정현채(60) 교수는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의사이다. 의대 강의 외에도 전국 방방곡곡 260회 이상 죽음에 대한 강연을 하러 다녀 ‘죽음학의 전도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음 이후엔 무엇이 있을까. 잘 죽기 위해선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난 16일 찾아간 그의 연구실은 병원 본관과 장례식장 사이,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다는 아담한 2층 벽돌건물 안에 있었다. 소나무 아래 붉은 벽돌이 봄볕을 받아 따뜻했다.

1층 그의 연구실 앞에는 ‘간 연구소’란 현판이 붙어 있었다. 자료로 빽빽한 방 안은 언뜻 보아 여느 연구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일반 의학 서적들과 별도로 나지막한 책꽂이에 죽음과 관련된 서적들이 2단으로 쌓여 있고, 죽음과 관련된 영화 디브이디(DVD)들이 차곡차곡 모아져 있는 걸 제외하고는. 자세히 보니 화이트보드에 이번달치 강연 일정이 촘촘했다. ‘영화를 통한 죽음 이해’, ‘웰빙과 웰다잉’, ‘근사체험’(近死體驗: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체험) 같은 강의 제목들이 눈에 들어왔다.

-연구실이라고 해서 ‘죽음연구소’나 ‘웰다잉(Well-dying) 연구소’ 같은 곳에 계실 줄 알았는데 ‘간 연구소’여서 좀 의외였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