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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문화아카데미

‘남과 북의 삶의 이야기 나눔’을 위한 워크숍

진정한 대화를 위해 되새기는 관용의 의미

- 남과 북의 삶의 이야기 나눔’을 위한 워크숍 2012. 9. 5(수)

공동 주최: 대화문화아카데미,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관용이란 수용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들고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것을 수용하면서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이유를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 관용입니다.

베를린 장벽은 22년 전의 어느 날 밤 무너졌지만 독일인의 마음 속 장벽까지 단숨에 사라질 수는 없었다. 독일은 1990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후, 사회 전반에서 진정한 통일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 덕분에 이제는 예전 동독 지역을 여행해도 겉으로 보기에는 동독의 흔적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독일 통일이 꽤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독일인들이 그들의 통일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다. 둘로 나뉘어 있을 때는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통일이 되고 나서 보니 서로 다른 점들이 속속 드러났고 사소한 의사 소통에서부터 부딪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독일 동서포럼을 이끌고 있는 악셀 슈미트 괴델리츠 이사장이 18년 전 동서독 출신들의 이야기 나눔 모임을 시작한 것은 바로 이런 문제 의식 때문이었다. “서독인들은 동독에 대해 전혀 교육받지 못한 채 갑작스레 통일을 맞았습니다. 서로를 알지 못했으니 갈등이 생겨났죠. 우리의 삶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나누는 것이야말로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괴델리츠 이사장을 한국에 초청해 동서포럼의 경험을 듣고 북한 이탈 주민과 남한 주민의 소통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는 워크샵이 20129 5() 대화문화아카데미 다사리마당에서 열렸다. ‘남과 북의 삶의 이야기 나눔을 위한 워크샵’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번 모임은 대화문화아카데미와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함께 준비했으며 북한이탈여성지원과연대, 여명학교, 한국교회협의회, 아름다운재단, 북한대학원대학교 등에서 북한 이탈 주민들과 직간접으로 만나온 여러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동서포럼의 괴델리츠 이사장은 동서포럼의 이야기 나눔을 일종의 역사 수업”이라고 표현했다. “전략적으로 이야기를 끌어내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부모님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린 시절의 경험이나 일터에서의 경험 등 솔직한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구상했습니다. 개인의 삶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인데, 동서독은 서로 다른 역사관을 갖고 있었으니 학교에서 받은 역사 수업의 내용을 개인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보충하고 수정한 셈입니다.

첫 모임 이후 18년 간 수정을 거듭하며 다듬어온 동서포럼은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처음부터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괴델리츠 이사장은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첫 모임에는 동서독 출신의 사람들 15명이 왔는데, 연방 하원 의장이라던지 정치 문화 경제계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습니다. 많은 관심을 끌었지만 참가자 절반은 이야기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났고 결국 별 소득 없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여러분이 남북의 이야기 모임을 열게 되었을 때, 첫 나눔의 자리가 실패하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계속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실망하면 모임을 추진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해집니다.

첫 모임의 실패 이후로 그 다음부터는 총 10명을 참가자로 하여 동독과 서독 출신을 각 5명씩, 성별과 직업, 연령대를 적절히 안배하였다. 2 3일의 프로그램을 짜서 첫날 밤에는 차와 와인을 나누며 비공식적인 이야기 자리에서 마음을 여는 시간을 가졌다. 일단 어느 정도 친해져야 둘째 날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을 모은 자리에서 사회자로 참여한 괴델리츠 이사장은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놓으며 참가자들과의 간격을 좁히는 시도를 하였다. 그의 부모님은 드레스덴 근교에 대규모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1945년 소련이 동독을 점령하면서 농장은 소련 정부로 넘어갔고 그의 가족은 서독으로 이주했다. 괴델리츠 이사장은 우리로 치자면 북에 고향을 등지로 남쪽으로 내려와야 했던 가족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동서포럼이 열리는 장소는 바로 그곳, 통일 이후 독일 정부로부터 돌려받을 수 있었던 ‘구트 괴델리츠’ 농장이다.

현재 동서포럼은 한 달에 한 번 구트 괴델리츠 농장에서 열린다. 도시에서 모임을 할 경우 참가자들이 2 3일 동안 밖에 나갔다 오는 등 산만해지므로, 온전히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좋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각자 30분씩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할 기회를 갖고 다음 30분 동안 질의응답이 이어진다.

지난 18년 동안 구트 괴델리츠에서 대화를 나눈 동서독인은 이제 2000여 명이 되었다. 초기에는 실망스러운 모임도 있었지만 괴델리츠 이사장은 참석자들에게서 변화의 가능성을 목격하고 있다. “언젠가 뇌 전문가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인지적 이해, 정서적 변화가 함께 일어나야 선입견이 없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괴델리츠 이사장은 서로 극과 극인 두 사람이 대화 모임에 참가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한 사람은 나이가 지긋한 백작으로 동독 지역에 많은 재산을 버리고 서독으로 피해 살아야 했던 사람이었다. 당연히 그는 공산주의자를 증오했다. 그런데 같은 모임에 동독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낸 사람이 참석했다. 그는 당연히 귀족을 증오하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한 자리에서 극단으로 대립되는 각자의 인생 이야기를 했다. 서로 듣기 힘든 이야기들이었지만 그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모임이 끝났을 때 귀족이 이런 말을 했다.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정말 마음에 안드는 것은, 바로 제가 바로 저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동독 장관 출신인 남자도 같은 말을 했다. 이들은 사회의 부조리한 상황들이 각자의 생애를 결정지어 버렸다는 것을 머리와 가슴으로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야기 나눔을 통해 배우는 타인의 진실

오전에 있었던 괴델리츠 이사장의 강연에 이어, 오후에는 워크샵 참석자들의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다. 실제로 북한 이탈 주민들과 만나고 소통해야 할 자리에 있는 참석자들이 많은 만큼, 구체적으로 이야기 나누기 모임을 어떻게 구성하고 진행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집중되었다. 우선 참가자들을 어떻게 동서포럼에 오게 하는지, 참가 동기를 묻는 질문에 대해 괴델리츠 이사장은 기존 참석자들이 가장 설득력 있는 홍보요원이라고 답했다. “포럼의 감동이 생생할 때, 집에 돌아가자마자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라고 권유합니다. 이제는 1년치 정도의 참가자가 확보되어 있지만 처음에는 참가하도록 설득해야 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이우영 교수는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500명 정도의 북한 이탈 주민을 인터뷰했는데, 공부를 하고 훈련을 받아온 대학원생들이 인터뷰를 하는데도 인터뷰 과정에서 사고가 생기곤 합니다. 오해 때문에 빚어지는 소통의 문제인데 이는 정부가 1인당 1억 원씩 예산을 들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바뀌어야 해결될 문제입니다.

여명학교의 조명숙 교감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선교훈련원의 배경임 부장을 비롯한 여러 참석자들은 북한 이탈 주민과의 대화에서 정서적인 소통이 중요하다는데 의견을 함께 했다. 또한 지금은 남한 사회로 들어온 일부 북한 이탈 주민들과의 소통이 문제이지만, 한반도가 통일되었을 때 남북한인이 하나의 사회를 꾸리고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소통하며 내적 통합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미리 고민해두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모든 참석자들이 공유하였다.

또한 이 같은 모임에서 사회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단지 진행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동서독 출신의 대표가 한 명씩 있다는 것이 참가자들에게 중요하며, 오랫동안 단절되어 있던 두 지역 사람들 사이에 표현 방식이 다른 탓에 오해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도 동서독 출신 1명씩을 사회자로 두는 것이 이상적이다. 동서포럼은 사회자 교육 프로그램을 따로 진행하기도 한다.

이번 워크샵 참석자들이 가장 많은 의견을 주고받은 주제는 이야기 나눔 모임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수용할 뿐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동서포럼의 기본 규칙에 대해서였다. 괴델리츠 이사장은 이렇게 강조했다. “누구도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을 방해해서는 안되며, 평가해서도 안됩니다. 무의식 중에 비언어적인 표현으로도 거부감을 표현하는 일이 없도록 사회자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저는 사회자로서 낯선 이야기가 나올 때 그 이야기를 수용하고 관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언제나 미리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하에서 살아온 동서독,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능할까? 참석자들은 실제로 북한 이탈 주민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마음을 열지 못하기 때문에 대화가 아예 시작될 수 없었던 사례, 남한 주민과 북한 이탈 주민의 대화 방식 차이 때문에 빚어진 넘기 힘든 벽에 대한 경험을 들어 이야기했다. 또한 북한 이탈 주민 입장에서는 여전히 북한에 가족과 친척이 있으며 남한 주민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을 열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

이번 워크샵의 사회를 맡은 유네스코 아태무형유산센터의 이삼열 사무총장은 북한 이탈 주민들이 갖고 있는 남한 사회에 대한 환상이나 북한 정권에 대한 생각이 남한주민의 생각과 크게 다르다는 점을 들어, 역사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를 시정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는가라는 논점을 제기했다.

괴델리츠 이사장은 동서포럼에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 관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논쟁을 시작하거나, 상대를 가르치려 들기 시작하면 포럼의 의의가 없어집니다. 이야기 나눔 모임은 자기 삶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자리이지 논쟁의 자리가 아닙니다. 관용이란, 수용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들고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것을 수용하면서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 관용입니다.

괴델리츠 이사장의 말처럼 세상에는 나의 진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진실도 있다는 것을 새기며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노력은 북한 이탈 주민과 남한인의 대화에서만이 아니라 남한 사회 내부에서도, 여느 사회에서라도 실천해야 할 보편적 진실이다. 18년 동안 대화에 참여한 동서독인의 2000명은 독일 전체 인구를 생각했을 때 결코 많은 숫자가 아니지만, 서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과정이란 물리적 장벽을 무너뜨리듯 단숨에 이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닐 것이다. 남과 북이 진정으로 공존하기 위해 더디지만 꾸준하게 찾아나가야 할 길이다.